지난 5일 구글코리아가 자사 블로그에 올린 지도 반출 요청에 관한 글을 읽었을 때 처음엔 또 규제 때문인가 했다. 구글은 한국 정부가 지도 반출을 허용해 주지 않아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가능한 구글맵스의 길찾기 기능이 유독 한국에서만 되지 않는다고 했다.
여태 구글의 길찾기가 안 됐었다니 새삼 놀라워 구글지도를 켜 봤다. 지도를 바탕으로 내가 있는 위치까지 분명하게 잡혔다. 대중교통 정보도 떴다. 그러나 정말로 길찾기는 되지 않았다. 이번에는 애플지도를 켜 봤다. 애플도 구글과 마찬가지로 같은 종류의 지도 반출을 신청한 상태다. 그런데 애플지도는 구글이 지도가 없어서 못 한다던 길찾기 서비스를 하고 있었다.
구글과 애플이 한국 정부에 반출을 요청한 1대5000 축척의 국가지도는 50m 거리를 1㎝로 표현한 고정밀 수치지형도다. 이 지도는 도시계획이나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등 주로 공공사업 목적으로 사용된다. 언뜻 구글의 주장만 보면 대부분의 나라는 이미 구글에 1대5000 지도를 제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구글이 밝히지 않은 사실 중 하나는 한국처럼 국토 전체를 1대5000의 대축척 지도로 보유한 나라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영국과 프랑스, 독일, 일본의 국가지도는 우리보다 낮은 1대2만 5000 축척(250m를 1㎝로 표현)이고, 일부 도심 지역에서만 1대5000 지도를 사용한다. 때문에 구글도 이런 나라들에선 한국에 요구한 1대5000 지도가 아닌 1대2만 5000 지도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실제 1대5000 축척의 국가지도를 내준 나라가 있는지 구글 측에 문의했지만, 구글은 나라마다 도심과 지형이 달라 적합한 지도가 다르다는 말 외에는 시원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한국에서도 1대2만 5000 지도는 반출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있다. 구글에서 불가능한 길찾기가 애플에서 가능한 이유도 애플은 이 지도를 이용해 서비스하고 있어서다. 그런데도 구글은 이러한 사실을 쏙 뺀 채, 한국이 지도를 내주지 않아 길찾기 서비스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만 십수년째 되풀이하고 있다.
정부가 1995년부터 1조원 이상을 들여 완성한 국가 정밀지도는 그 자체로 국가 안보 자산이나 다름없다. 전문가들은 고정밀 지도를 구글의 위성 영상과 겹치면 군사시설 등이 노출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서는 구글 지도가 업데이트되면서 군사 기밀 시설이 노출돼 이를 다시 가리는 데 애를 먹은 사례도 있다.
이에 정부는 구글에 국내에 서버를 설치하고, 위성사진에서 보안 시설을 가리고, 좌표를 삭제하는 등 3가지 조건을 갖추면 지도 반출을 허용하겠다고 제안했다. 이는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사업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특히 서버는 한국에 둬야 보안에 문제가 생겼을 때 우리 정부가 바로 대응할 수 있다. 그러나 구글은 위성사진의 가림 처리 외 다른 조건을 수용하지 않고 있다. 구글의 길찾기는 한국에서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