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재앙이 덮친 배추 주산지…‘무름병’ 전국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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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미애 기자
서미애 기자
수정 2025-10-30 10:20
입력 2025-10-30 10:20

폭염·잦은 비 배추 무름병·뿌리썩음병 확산세
해남 150㏊ 초토화, 괴산·강릉·부안까지 번져
농민 “자식 같은 배추 갈아엎어야 할 판” 절규
정부 차원 ‘기후재난’ 인정 재해보험 대책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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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름병 걸린 배추. 해남군 제공
무름병 걸린 배추. 해남군 제공


이상기후가 초래한 고온다습 환경 속에서 가을배추 최대 주산지인 전남 해남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전국 주요 산지에 ‘배추 무름병’과 ‘뿌리썩음병’이 동시 확산하면서 배추 농가에 비상이 걸렸다.

농민들은 이번 병해를 농가의 관리 영역을 넘어선 ‘기후재난’으로 규정하고 정부 차원의 긴급 피해 조사와 실질적인 재해 보상 대책 마련을 강력히 촉구하고 나섰다.

전국 최대 가을배추 주산지인 전남 해남은 올여름 폭염과 9월 초 잦은 강우로 고온다습한 환경이 장기간 지속되면서 생육이 급격히 위축됐다.

이로 인해 발생한 무름병은 배추의 지제부와 줄기에서 시작해 결구까지 물러 썩게 만든다. 특유의 악취와 빠른 전염성으로 방제가 거의 불가능하다.

해남군에 따르면 전체 재배면적 5,044㏊ 중 약 150㏊(3%)가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된다.

15년째 해남에서 영농을 이어온 김광수(57) 씨는 “뿌리가 영양분을 먹지 못해 배추가 물러지고 검게 변했다”며 “자식처럼 키운 배추를 통째로 갈아엎어야 한다”고 토로했다.

피해는 해남을 넘어 강원 강릉, 경북 안동, 충북 괴산, 충남 홍성, 전북 부안 등 전국 산지로 확산 중이다. 충북 청주에서는 트랙터를 동원해 배추밭 3,960㎡(1,200평)를 갈아엎는 농민 시위까지 벌어졌다

현장 농민과 전문가들은 이번 병해를 농가의 관리 소홀로 보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폭염과 집중호우가 교차한 극단적 기상패턴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해남배추생산자협회는 “이번 사태는 명백히 이상기후로 인한 자연재해임에도, 정부는 여전히 병해충으로 분류해 보상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며 “농가 손실을 민간 책임으로 떠넘겨선 안 된다”고 비판했다.

정부는 올해 처음으로 ‘가을배추 자연재해성 무름병’을 재해보험 시범 품목에 포함했지만, 대상 지역은 충북 괴산·전남 해남·경북 영양 등 세 곳에 불과하다. 가입 농가도 극히 일부에 그친다.

이에 따라 현장에서는 “시범이 아니라 전국 단위 재해 인정과 보상 체계화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해남군은 농림축산식품부에 무름병을 ‘자연재해형 병해’로 공식 인정해 달라고 요청하는 한편, 긴급 방제비 2억원을 확보해 등록 약제를 배추 재배농가에 공급 중이다. 또한 현장기술지도반을 편성해 피해 농가별 맞춤 방제와 재배기술 지원에 나섰다.

해남군 관계자는 “병해 발생 원인이 명확히 기후 변화에 있는 만큼 지자체 차원의 방제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국가적 대응 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농업 현장은 이번 사태를 단순 병해가 아닌 ‘기후 전환기의 경고’로 해석하고 있다. 기후변동으로 인한 고온·다습·집중호우 패턴이 반복되면서, 과거의 농업 기술과 방제 시스템만으로는 대응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전남농업기술원 관계자는 “무름병 같은 세균성 병해는 온도와 습도 변화에 즉각 반응하기 때문에, 기후 적응형 품종 개발과 스마트팜형 재배 전환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또한 “재해보험 제도를 질병형 피해까지 포괄하도록 재설계하고, 병해충의 ‘기후재난화’에 대비한 국가 차원의 상시 모니터링 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해남 서미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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