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외계인의 꿈… 사랑의 능력을 끝까지 믿어봐요[오경진 기자의 노이즈캔슬링]

오경진 기자
수정 2025-07-01 00:17
입력 2025-07-01 00:17
<38>1994년생 시인 신이인

시인 제공
‘시(詩)는 외계인이 꾸는 꿈이다.’
얼마 전 시집 ‘나 외계인이 될지도 몰라’(문학동네)를 엮은 신이인(31) 시인을 만나 시와 문학에 관해 한참을 떠든 뒤 내린 결론이다. 저 아리송한 문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두 가지 질문이 해명돼야 한다. 꿈은 무엇인가 그리고 외계인은 누구인가.
“이 세계와 내가 피차 낯설다고 느낄 때. 그 감각을 지닌 이는 모두 외계인이죠. 시인은 당연히 외계인입니다. 하지만 평범한 직장인이라고 다를까요? 어쩌면 우리는 다 외계인일지도 모릅니다.”

●경계에 머무르며 탐구하는 시인
경계(境界)에 머무르며 그곳을 탐구하는 시인. 2021년 등단 당시 한 선배로부터 이런 평가를 들었던 신이인은 이제 스스로 외계(外界)에 있다고 말한다. 신춘문예 당선 소식을 듣자마자 멀쩡히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냈다. 그렇게 2023년 나온 첫 시집 ‘검은 머리 짐승 사전’(민음사)과 이번 시집은 사뭇 다르다. 지극히 솔직한 필치로 시인의 불안한 내면을 전했던 전작과 달리 이번에는 다채로운 이미지와 상황이 앞세워진다. 그래도 결국 ‘시는 시인의 이야기’라는 게 그의 지론. 끊임없이 자기를 내보이는 글쓰기. 그래서 시인은 “시를 쓰는 일이 종종 부끄러울 때도 있다”고 고백했다.
“신이 있는지 없는지 확신하지 못하겠어요. 그 존재나 가치에 판단을 내릴 만큼 지혜롭지 못하기 때문이죠. 신과 헤어졌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조금 시간을 갖는다고 할까요. 죽기 전에는 다시 그에게 돌아갈지도. 언제일지 모르겠지만….”
신이인은 신을 배신한 시인이다. 모태신앙이었으나 이십 대의 어느 날 신에게서 멀어지기로 작정했다. 세상이 방종으로 흐르지 않도록 중심을 잡고 규율을 세우는 것이 사회에서 종교가 가진 역할일 터다. 그러나 성인이 되면서 그것이 속박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교회를 나가지 않은 지 꽤 오래됐으나 그는 아직 신의 자장(磁場) 안에 있는 듯했다. ‘뱀’, ‘부활절’, ‘방주’…. 시집에는 성경을 떠올리게 하는 시편이 여럿 담겼다. 신의 가르침을 ‘사랑’이라고 배우지만 현실의 종교는 그 사랑을 온전히 설파하고 있는가. 신이인의 시는 ‘사랑할 수 있음’과 ‘사랑하지 않음’ 사이를 진동한다.
“사랑은 무엇이라고 말할수록 미궁에 빠지는 것입니다. 무엇인지 알고 싶어서 계속 시를 쓰죠. 알았으면 단언했겠지만 그렇지 않으니 이렇게 헤매는 것 아닐까요. 중요한 건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한편이 되지 않더라도 계속 사랑하겠다’는 것. 내 사랑의 능력과 희망을 믿는 것이죠.”
이제 첫 질문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렇다면 ‘꿈’은 무엇인가. 시집 마지막에는 ‘꿈동산’이라는 시가 나온다. 시인은 원래 이 시를 시집의 제목으로 밀어붙이기도 했다. ‘꿈의 기계’, ‘꿈의 옷’ 등 제목에 꿈이 들어가는 시가 11편이나 있다. 전체 시가 52편임을 고려하면 이는 상당히 의도적이다. 시인이 ‘꿈’이라는 것에 무언가를 강력하게 투영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물론 꿈에 관한 여러 과학적, 의학적 연구와 정의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논외로 치고 시인이 정의하는 꿈이란 무엇인지 물어봤다.
●꿈에서 서사 빼면 내 상태 알 수 있어
“인간의 진실을 거짓처럼 구현해 나한테 다시 보여 주는 게 꿈이라고 생각해요. 지극히 현실적인 것이 꿈에서는 의미심장하게 뒤틀리죠. 꿈에서 서사나 이미지를 벗겨 내면 지금 내가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있죠. 시도 그렇습니다. 시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이야기를 통해 굴절돼 독자에게 가잖아요. 하나의 이야기가 프리즘을 통과해 여러 각도로 펼쳐지지만 그것 역시 다 각자의 진실이죠. 결국 시인에게 시는 꿈이네요. 안 보이는 곳에서 혼자 지르는 비명이기도 하고요.”
오경진 기자
2025-07-01 30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